본문/내용
『나폴레옹』
<생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인이었다 한다. 프랑스 혁명이후 불안정한 정권을 이용해 1977년 튈르리 궁전에서 제1위 집정관에 올랐고 그 후 황제로 즉위했다.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고 파리를 세계에서 가장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계획에 착수했으며, 파리에 거대한 기념비와 승전기념물로 장식했다. 허나 월터루 전쟁에서 패하고 권좌에서 물러나 오랜 유배생활 끝에 쓸쓸히 죽어갔다. 뛰어난 전술가이자 정치가인 동시에 침략자이자 약탈자인 나폴레옹!
어찌 되었던 프랑스의 한 시대적 획을 그은 인물이다.
<나폴레옹 신화>
“영웅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 만들어진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사실이 아닌 이미지에 의해 왜곡된 것이다.”
“나폴레옹 신화의 특징은, 나폴레옹 자신에 의해 대부분의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1796~1797년 로디·아르콜레·리볼리 전투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1년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28세의 용장은 재빠르게 ‘이탈리아 원정군 소식’ ‘이탈리아 원정군이 본 프랑스’ 등의 소식지를 창간했다. 자신의 위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나폴레옹이 만토바를 함락시켰던 1797년 2월, 파리서 창간된 ‘보나파르트와 덕망가들의 신문’은 “한니발은 카푸아에서 잠을 잤지만 지칠 줄 모르는 보나파르트는 만토바에서 쉬지 않는다”며 젊은 장군을 치켜세웠다.
나폴레옹 우상화는 그가 황제가 된 뒤 절정으로 치달았다. 1806년 반포된 ‘제국 교리문답’은 “우리 황제를 경배하고 받드는 일은 곧 신을 경배하고 받드는 일”이라며 총대를 멨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프로이센 군대를 무찌르자 우상화는 극에 달한다. 독일 지식인들은 “전제군주를 내쫓고 자유·평등·박애의 혁명정신을 전파할 해방군”이라며 프랑스군에 환호했다. 헤겔은 1806년 예나 전투서 승리한 나폴레옹에 대해 “말을 탄 세계정신의 출현에 대한 존경”을 보였다.
…
서 ‘구국의 영웅’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메시아>
성서에서 구주(救主) ·구세주(救世主)를 가리키는 말로 헤브라이어의 m??a含(기름을 붓다)의 명사형 masiah(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그리스어화 한 말(Christos)로 ‘그리스도’의 어원(語源)이 된 것이다. 《구약성서》에서는 기름부음을 받고 왕위에 오르는 이스라엘의 왕은 물론, 사제나 또 사울왕의 방패와 같은 물건도 메시아라고 부르다가, 장차 나타날 왕으로서의 ‘구세주’에 대한 기대(期待)로 메시아에 관한 많은 예언이 행하여졌다. 그러나 《구약성서》 본래의 의미는 하느님의 대행기관으로서의 은사를 받은 자(판관 8:22, 사무상 8:7)로 왕이나 대제사장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제자들이 예수를 대제사장(히브 9:23~28)으로, 예언자로, 왕으로 믿은 것(마태 16:16)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역할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선택-계약 관계에서 그 중간을 다리 놓는 것으로, 영(靈)을 받은 자, 신(神)의 의사를 전달하는 자, 죄를 씻는 제사의 희생제물 공여자, 재판장, 새 생명을 통치하는 자 등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메시아의 개념은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점차로 개인에 대한 기대가 부각되고, 각 집단이 각기 다른 내용을 강조하면서 종말론적인 개념으로 변이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와 고난이 오히려 메시아 신앙을 강건하게 하고 신학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메시아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메시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17세기에 나타난 거짓 메시아 샤베타이 체비이다. 이와 같은 메시아에 대한 신앙과 기대는 유대교의 교리로 굳어졌으며, 유대교의 현대화 운동들은 더 이상 개인적인 메시아를 내세우지 않고 구원된 세계와 메시아적 미래에 대한 전통적인 신앙을 유지하려는 개념으로 변화하였다.
<프로메테우스>
‘생각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