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우리가 고전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시대의 산물이면서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당대의 문제를 넘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보편적인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고전이다. 즉 우리가 당면한 문제와 그 해결방안을 찾는데 어떤 시사점을 주고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50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인구에 회자되고 여러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고전의 앞자리에 거론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문제 해결에 어떤 보편성과 함께 독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사상가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사상가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자신들의 정치관, 정치이론에 따라 정치에 개입하고 그를 통해 세계를 개변시키고자 하는 요구에서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정치사상가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목도할 수 있는 사실이다. 마키아벨리도 그러한 사람중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흔히들 마키아벨리라고 하면 마치 악의 화신처럼 느껴지고 `마키아벨리즘`은 권모술수와 동의어로 쓰여지는데, 이러한 일반의 상식은 실제의 마키아벨리와 그의 사상에 접근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줄 수가 없다. 오히려 실제의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굳어있던 고정관념의 껍질을 깨고 좀더 차분한 검토가 전제돼야 하리라. 그러한 바탕에서 당대의 현실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경험하고 느꼈던 바가 무엇인지, 또 그가 말하고 실현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군주론] 읽기는 그 첫 관문이다.
[군주론]을 통해 마키아벨리와 우리를 연결하는 가교를 놓고 그를 통해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사상이란 무엇에 복무하는 것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1.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와 [군주론]
1502년은 마키아벨리의 일생에서 운명적인 해였다. 아니 훗날의 [군주론]의 독자들 입장에서 그럴지 …(생략)
2. 마키아벨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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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 제15장 중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 대해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지만 소위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정치술수론의 대명사처럼 [군주론]이 인용되는 데는 위와 같은 구절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처럼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이 권모술수론으로 낙인찍힌 이유를 알기 위해 우리는 우선 그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사상은 시대의 산물이고 한 사람의 사상은 그가 살았던 당대의 현실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경우도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마키아벨리의 인간관, 시대인식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시대상황을 옳게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키아벨리가 살고 활약한 시대는 15세기 말엽에서 16세기 초반이다. 당시 유럽은 중세 봉건질서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충만했고 이는 르네상스로 꽃피었다. 이 르네상스의 중심이 이탈리아였다. 르네상스는 문화를 필두로 경제, 정치, 사회 전 영역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일컫는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근대의 문은 열리게 된다.
이 르네상스의 핵심에는 사람들의 자아에 관한 초보적 의식이 움트고 있었고 종교적 권위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즉 사람이 신을 대신해 역사의 무대에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인간의 역사무대로의 등장은 철저히 개인으로였다. 이것이 당시의 한계다.
이런 시기를 배경으로 등장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당시의 시대정신 즉,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의 요구를 일정하게 담지한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정치행위 역시 종교의 윤리나 도덕과는 다른 자신의 내용을 갖는다고 마키아벨리는 생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는 도덕과는 다르다는 현실을 간파했던 것이다. 이 냉철한 현실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