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리나라 호주제도의 역사
Ⅰ. 한말이전의 호주제도
1.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는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서 거기서 혼인식을 올리고 그대로 그곳에서 생활하며 자녀를 낳아 성장한 후에 여자를 데리고 남자 집으로 돌아오는 서류부가(?留婦家)의 가족생활을 행하였다.
신라에서는 자매(姉妹)도 형제(兄弟)와 구별하지 않았고 적자(嫡子)와 서자(庶子)도 차별하지 않았다. 삼국시대에는 가부장적 가족이 확립되지 않았고 호주권이니 가장권이니 하는 용어는 이 시대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2. 고려시대
신라와 인접한 고려시대에는 재산상속에 있어서 자와 녀 또는 친손과 외손 간에 차별이 거의 없는 시대이며 근친혼 또는 동성혼이 널리 행해졌다.
고려시대의 호적문서에는 ?호주(戶主)?라는 호칭은 없고 ?호(戶)?라는 용어 밖에 없다. 호적의 맨첫머리에는 호주로 보이는 자의 신분, 연령, 본관 등이 기재되어 있고, 대체로 남자가 호주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도 호주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1) 호적의 기재형식을 보면 자녀의 남년의 구별이나 기혼, 미혼의 차별은 거의 없고, 연령의 구별의식은 강하다.2) 이런 고려시대의 호적편성은 양반(兩班)과 평민(平民)의 계급에 따라 그 내용과 목적을 달리하고 있는데 양반은 가계(家系)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고, 3년에 한번씩 개적(改籍)하였다. 호적기재내용은 호주의 세계(歲計), 동거하는 자식, 형제, 질서지족파(姪?之族派)에서부터 노비소전종파(奴婢所傳宗派)에 이르기까지 그 소생의 이름과 나이 등이며, 양반의 신분증명과 면역면세(免役免稅)의 자료로 삼았다. 상민(常民)의 호적은 양천(良賤)의 구별과 요부(搖賦)의 정확에 두는 계구적민이 목적이었고 호적편성은 동거주의에 기초한 주민등록의 성질을 갖는 것이었다.3)
3. 조선시대
조선시대 호적제도는 고려의 양반제도를 답습하면서 더욱 …
1. 한말의 호적제도
아니라 토착적인 행위규범(관습)에 의한다는 원칙의 기원이 만들어지며 이러한 관습규범과 함께 일본식 근대법이 도입되면서 1915년 민적법(民籍法)의 개정으로 인구조사방식이 폐지되고 추상적인 가란 사실적 거주상태와 상관없이 호주를 중심으로 조직된 호적문서에 기재된 가족을 의미한다. 일본의 법적 제도적 틀을 통하여 일본 가족문화가 식민지시기동안 조선에 유입되었고 사실상 일본식 씨(氏)제도는 호주제도와 함께 그들의 가족제도와 통합된 것이어서 조선에서 일본식 가족제도의 완결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 제도였다. 내선일체를 구현시키기 위한 행정적, 이념적 정치학의 바로 그 지점이었으며 일본식 씨제도와 관련된 제도들은 1945년 탈식민지이후 일본에선 곧바로 폐지되었다.
일제시기 관습법의 원천이었던 명종(名種)문서에서 보면 조선시대 가족제도에서 존재하던 종자(宗子), 종손(宗孫)이라는 지위가 호주라는 지위의 관점에서 해석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고, 종자, 종손의 권위의 원천이 조상집단에 있다면 호주는 국가가 승인하는 서류상의 지위라는 점에서 국가가 인정하는 가부장권이며 궁극적으로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지위이다.9)
각주)-----------------
박병호, ?호주제의 변혁과 문제점?, 김용한교수화갑기념논문집, 1990, 259쪽.
박병호, 위의 글, 272쪽.
전봉덕, ?호주제도의 역사와 전망?, 대한변호사협회지, 1982년 10월.
경국대전 호전 ?호적?.
박병호, 민법학의 현대적 과제, 박영사, 1987, 681쪽.
이희배, 한국가족법의 제문제, 일신사, 1976, 141쪽.
세조 6년 편찬 시작, 예종 원년 완성.
최용기, ?동양사회의 가족관?, 강좌가족8, 335-336쪽.
양현아, 일제식민지유산을 활용하고 있는...., 시민연대포럼, 1999년 12월.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