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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읽고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지금 예순 일곱 살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청춘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곧 인생이 끝나게 되겠지만, 젊게 느껴진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알튀세르의 자서전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읽은 독자라면, 그가 자신의 자서전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서술한 부분을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알튀세르 생각이 집약된 듯한 느낌의 이 부분을 기억한다. ‘알튀세르’란 인물, 나에겐 무척이나 생소함으로 다가왔던 인물이었다. 그의 자서전을 읽기 전까지 난 그에 대하여 들어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땐 난 단지 이 책이 어떤 한 학자의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서술한 그런 종류의 책이라 생각했다(지금와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군). 그러나 책을 차츰 읽어가면서 이전에 내가 생각하던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의 생과 삶을 그린 자서전이란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알튀세르의 이 책은 물론 다른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출생과 유년 시절의 회상, 삶의 반성과 후회, 자신의 사상과 정신에 대한 ‘애도작업’등과 같은 …
내가 일러두고자 하는 것은 이 글이 일기도 회상록도 자서전도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것을 희생시키면서 내가 오직 드러내고자 한 것, 그것은 바로 내 존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또 나의 존재를 이러한 형태로, 그 속에서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게 되고 타인들도 나를 알아 볼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그런 형대로 만들었던 정서적 감정상태의 충격이다.
에 시달리던 ‘정신병자’이자 그 병으로 인해 자신의 아내인 ‘엘렌느’를 죽이는 살인자이기도 했다. 혹자는 알튀세르를 ‘정신병자 철학자’, ‘미치광이 지식인’으로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인간의로서 그를 그렇게 평가할는지도... 난 알튀세르의 철학적 정신,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진 못했다. 그러기에 알튀세르의 자서전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이 책을 그의 생각과 의도를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내가 여자이기에 글의 초반부에 나오는 그의 유년시절, 일반적인 사내아이의 느낌과 감정들의 서술들에 대하여 나 자신이 작가안으로 스며들어 그것의 느낌들을 모두다 받을 순 없었다. 글을 펴낸 편집자 역시 이 글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난 이 글을 알튀세르의 자서전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보다는 알튀세르 자신에 대한 하나의 솔직한 글로서 그의 글을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작가나 타인에게는 너무도 무책임하고 한심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방법이 내가 이 책을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내가 일러두고자 하는 것은 이 글이 일기도 회상록도 자서전도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것을 희생시키면서 내가 오직 드러내고자 한 것, 그것은 바로 내 존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또 나의 존재를 이러한 형태로, 그 속에서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게 되고 타인들도 나를 알아 볼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그런 형대로 만들었던 정서적 감정상태의 충격이다.
알튀세르는 자신의 책 앞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어떤 면에서 본다면 자신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한 일련의 애도작업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책의 이 부분과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내용들을 접하면서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을 문뜩 떠올리게 되었다. ‘소문’이란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널리 알려진, 어떤 말이나 사실, 일반적으로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