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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사랑...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2009년 4월 13일. 23년 전 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날이다. 그리고 나는『엄마를 부탁해』를 선물 받았다. 선물에 인색했던 나였지만, 이 책을 선물 받으니 가슴 한편이 아련해져왔다. 엄마... 나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잊고 지낸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4년 전 이맘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하셨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오늘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서 이 책을 선물 받게 되면서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날 수 있게 해주었던 당신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이 책을 받는 순간, 나는 세상 그 어떤 생일 선물보다 값진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작가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도쿄타워』를 읽은 적이 있었다. 문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 구성이 독특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작위적인 감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 마음을 그대로 옮겼기에 어머니에 대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문단에도 실력있는 작가들이 많다. 그 중 90년대를 밝힌 4대 여성작가로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조경란이 그들이다. 얌전하고 차분한 문장으로 대중의 가슴에 가장 따뜻한 공감을 선물하는 우리시대의 대표작가 공지영. 문학적 색깔에 있어 공지영과 대척점에 서서 `은희경표 냉소주의`라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완성시킨 은희경. 섬세한 감각과 치밀한 문체로 자아의 존재론적 탐구를 추구하는 조경란. 한국에서 가장 섬세하고 완벽한 문체를 구사하는 혁신적인 작가 신경숙. 작가 신경숙과의 만남은 궁중 무희의 신분으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실존 여인 `리진`의 삶을 그린 소설 『리진』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오늘『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가슴 뭉클해지는 `엄마`라는 소재로 다시 한번 나에게 다가왔다.
신경숙 문학의 핵심코드는 `문체`…
흐름을 주도하는 화자가 교체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각 장의 화자는 `너`, `그`, `당신`으로 바뀌면서 `엄마`의 존재성을 입체화한다. 작가는 딸을 `너`로, 아들을 `그`로, 남편을 `당신`으로 설정했다. 시점의 전환은 각자가 간직한, 그러나 서로가 잘 모르거나 무심코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과 가족들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각 장은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모놀로그를 보는 듯한 극적인 효과를 지닌다. 각자의 내면에 자리잡은 어머니의 상은 각각 남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서로가 연결되고 스며들어 탁월한 모자이크화로 완성된다.
`나`라는 친숙한 일인칭 주어를 거부한 채 내가 아닌 타인을 지칭하는 인칭대명사를 차용한 작가의 고집은 `엄마`와 나와의 거리감을 좁혔다. 작가에 의해 의도된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감 좁힘은 소설 속 엄마를 그동안 내가 잊고 지냈던 `나`의 엄마로 치환시킨다. 곧 소설 속 `너`, `그`, 당신`은 곧 현실의 `나`가 되는 것이다. 소설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착각하게끔 해서 작품 안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갈 때쯤,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일인칭 화자로 시선을 주도하는 넷째 장은 엄마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전지적 시각의 이야기였다. `엄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작은 딸의 집과 한때 마음으로 의지했던 사랑을 찾아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며 독백을 한다. 그녀의 마음은 고마움, 미안함, 자상함,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있었다. 한편으론 처절할 만큼 열심히 살아 온 삶에서 벗어나는 데 대한 홀가분함이 느졌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돌아 본 그 여인은 자신의 엄마를 찾는다. 이 독백을 통해 세상 모든 `엄마`가 발현해내는 `신성(神聖)`과 한 여인으로서 감춰야만 했던 내밀한 `인성(人性)`의 공존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국사회는 오랜 유교적 문화와 습속으로 여성은 곧 `어머니`여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왔다. 여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