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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다녀와서
태조 3년 10월 한양천도가 있은후,정종은 그 원년 3월 고려의 옛 서울인 개경을 환도하였고 다음 태종이 즉위하여 재차 서울로 천도하게 됬던 것이다.
창덕궁은 태종이 재천도하면서 창건된 궁이다 .
태종이 말하되 개성은 왕씨의 구도이므로 이게 거처할 수 없는 곳인데 지금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태조시조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한성은 태조상왕의 창건지 이며 종묘와 사직이 있다 이곳에 거처하지 않는 것은 뜻을 잇는 바 효[孝]가 못되니 근년 겨울에 내가 옮아가 거처할 것이니 궁실을 짓도록 하라라고 명하였다. 태종 4년에 시작한 창덕궁 공사를 만 1년만에 완공하고 이름을 창덕궁이라 하였다. 태종 11년에 이르러서는 진선문 석교(금천교)를 시축하고 태종 12년에는 돈화문을 건립함으로써, 창덕궁은 완전한 궁궐로서의 면모을 갖추게 된다.
어엿한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춘 창덕궁은 임진왜란까지 약 180여년간 별로 큰 재난이나 큰건물의 신축은 없었고 다만 인정전 후원 담장 증축과 수문당과 대조전의 중수등이 있었을 따름이다
임진왜란 후 폐허로 있다가 광해군때 재건을 시작하여 광해군 5년경 완전히 재건하였다.그후 인조반정때 대 화재가 발생하여 인정전만 남는 수난을 당했으나 그후 다시 여러 전각들을 재건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때 새로 지어진 건물은 대조전, 선정전, 희정당, 정묵당, 집상당, 보경당, 옥화당, 태와당,등이다.
철종 14년(1863)12월 철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함에 따라 고종은 인정전에서 즉위하였다. 그후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낙성되고 왕이 경복궁으로 이어한 뒤로는 창덕궁에 별로 수리나 영건이 없었다. 고종 10년 겨울 경복궁 자경전의 화재로 인해 왕은 다시 창덕궁으로 어어하게 되었으며, 그후 10년간 이궁에 거쳐하면…
철종 14년(1863)12월 철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함에 따라 고종은 인정전에서 즉위하였다. 그후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