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인간 인식의 한계 -철학적 회의와 흄의 자연주의-
Ⅰ. 들어가기
ⅰ. 철학이 던지는 회의
인간은 대상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고, 그를 엄밀히 하는 과정을 통해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지적인 측면에서 정확성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철학과 사학, 자연과학을 비롯한 학문을 발달시켰고 인간 삶에 유용한 수많은 지식들을 축적해내었다. 근대 이후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실한 증거를 댈 수 있는 학문의 영역, 경험과학을 더욱 발달시켰고, 실증주의가 지식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현대인 역시 모든 현상은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고한다. 진리는 실제적 증거의 제시가능성과 그 타당성을 담보한다.
그러나 대상을 탐구하며 어떤 것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것도 확실히 할 수 없음을 경험하곤 한다. 엄밀히 말하면, 가치와 관련된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에서 우리는 확실성을 갖춘 일반적인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 경험과학의 대표적인 분야인 물리학에서도 복잡계 이론 등의 연구는 모든 지식이 결국 가능성의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특정한 방향성을 띤다고 생각했던 사건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현상들은 모두 확률의 문제로 환원된다. 우리가 여태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진리들은, 사회 내에서 구성원들이 정한 기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주장일 뿐이다. 우리가 생각해 온 진리는 결국 상호 주관성에 기반한, 합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에 대한 이와 같은 회의는, 철학이 던지는 근본적인 문제들과 직면했을 때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 싼 세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가? 우리는 자아가 존재하고 외부 세계가 현존한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ⅱ. 흄이 던지는 질문
Ⅱ. 흄의 이론
ⅰ. 외부 세계에 대한 회의: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a) 외부 대상의 현존에 대한 회의
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점이다.”(T 187)1)
외부 대상에 현존에 대한 논의에서, 흄은 기본적으로 실증주의적 회의론의 태도를 취한다. 버클리의 주장처럼, 흄 역시 외부 존재는 이론적으로는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는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현존이 객관적인 절대자나 초월적 존재에 의해 증명된다는 식의 주장보다 훨씬 솔직하고, 현실적이며, 인간적이다. 인간은 외적 대상의 현존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회의론적 결론의 근거를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선 우리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때 우리가 그 어떤 것을 위치시키는 시?공간이라는 바탕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제시할 수 없다. 즉,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다른 사물과 구분되어 독립적?절대적으로 존재하는 틀이나, 외부 대상에 포함된 속성의 하나로 볼 수 없다. 전자를 따른다면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고, 후자를 따르는 경우 우리는 특정한 사물을 언제나 같은 시?공간 속에 위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두 경우 모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존재가 위치하는 시?공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 혹은 존재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생각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의 시간과 공간 개념은 서구인과 상당히 다르며, 이는 많은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뒷받침 되어 왔다. 워프는 아메리칸 인디언인 호피Hopi족에 관한 조사를 통해 호피 인디언들이 시간을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보지 않고, 각 사건이 펼쳐지는 단위로 끊어서 사고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2) 이를 설명하는 예로서, 만약 내일 아침에 시장에 갈 일이 있고, 낮에는 동생의 결혼식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동생의 결혼식이 ‘내일 낮’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와 달리 호피 인디언들은 ‘시장에 다녀온 후’에 동생의 결혼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내일’이라는 관념은 없으며 시간의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