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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 정지상 - 고려의 서정시인
▶ 대표시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강둑에는 풀빛 짙어 가는데서
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서 님 보내니 슬픈 노래 못 참겠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저 물은 어느 때나 마르려나?
別淚年年添綠波 이별 눈물 해마다 물결 위에 더해지니.....
‘대동강에서[大洞江]’ 또는 ‘님을 보내며[送人]’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이 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한시에는 이별을 소재로 한 작품이 수없이 많은데, 이 시는 천년 이래 최고의 작품으로 공인되어 중국에서 이별의 시를 대표하는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와 비견되었다. 신광수(申光洙)는 <관서악부(關西樂府)>에서 “예로부터 동국에는 문학이 성황이라/ 비단을 감싸 아끼던 시가 몇이던가/ 남포에서 님 보낸다는 옛날의 그 노래는/ 정지상이 지었던 천년의 절창이라”라고 하여 이 시를 일천 년 사이에 가장 잘된 시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시는 한시의 형식을 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시의 하나라는 점에서 우리 한시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한 수의 시만을 가지고도 정지상의 시는 고려시대 사람의 심층부에 도사린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는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현존하는 그의 다른 작품을 볼 때 정지상은 고려인의 서정을 한시의 형식으로 드러낸 가장 뛰어난 시인이었음이 분명하다.
▶ 작품세계와 사상
정지상이 태어난 해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본래 이름은 지상(知常)이 아니라 지원(之元)이었다. 그가 지상이란 이름으로 바꾼 것은 말년에 가까운 시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지상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노씨(盧氏)밑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부계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명망 있는 귀족 출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었다. 그는 개경에서 유학하기 이전에는 평양에서 머물렀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