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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와 사회운동
1.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하버마스
거대담론에 대한 융단폭격에 가까운 공격으로 인해 최근에는 총체성을 지향 하는 철학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총체성을 지향하는 거대이론들은 때로는 계몽주의로 혹은 구조주의로 묶여서 난도질을 당하곤 한다. 계몽주의나 구조주의에 대한 어떤 면밀한 가치평가도 이뤄내지 못하면서 단지 과거의 것이라는 사실 하나에 근거해 이러한 마녀사냥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중 마르크스 사상은 20세기를 긴장감 넘치는 삶의 광장으로 만드는데 근원적 힘을 제공했었다. 그런데 1989년도 이후 진행된 사회주의권 변화와 1991년도 소련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해 마르크시즘은 더 이상 쓸모없는 유물취급을 당하는 수모를 받고 있기도 하다. 현대의 핵심적인 사상가들이 마르크스의 영향력하에서 그들 사고 확장의 토대를 일궈냈다는 사실은 아주 가볍게 사장돼 버리는 것이다. 비록 스스로를 마르크스의 적자라고 자신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들뢰즈니, 알튀세르니, 브르뒤에니 하는 이들이 과거 자신의 사상편력중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던 인물이 마르크스였음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제반 논의들이 조명을 받는 이유도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재구성이라는 측면과 연결돼 있다. 그중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제2세대로 분류되는데 독일의 인정받는 철학자, 사회사상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글은 그의 이론의 핵심인 의사소통의 합리성과 체계와 생활세계의 구분등을 통한 패러다임의 재 구성을 검토해 보기 위해 작성됐다. 글의 구성은 하버마스의 철학적 기초와 연결돼…
1-1.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활동
1-2. 하버마스의 활동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운동은 호르크하이머(1895∼1973), 아도르노(1903∼69), 마르쿠제(1898∼1979) 등이 대표한다.
구물들은 전후 유럽의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뉴레프트(new - left) 계통 지식인들의 상상력을 고조시키고 있다. 하바마스 이론의 생명력도 이러한 맥락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1-2. 하버마스의 활동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운동은 호르크하이머(1895∼1973), 아도르노(1903∼69), 마르쿠제(1898∼1979) 등이 대표한다.
하버마스는 1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비판 이론의 비판자이자 계승자로서 비판이론 2세대의 대표자다.
하버마스는 1929년 비교적 유복한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쾰른근처 굼머스바하에서 성장했다. 파시즘의 등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시절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치 소년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파시즘의 몰락을 체험했으며 뉘른베르크의 재판(전쟁범죄자 재판)으로 상징되는 당시 정치 혼란과, 2차 대전 뒤에 나온, 강제 수용소와 대학살에 대한 기록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으면서 정치 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과거와의 단절을 직접 겪은 것은 어린 그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뒤 하버마스는 독일 사상과 문화를 다시 생각하면서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서구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그에게 이성, 자유, 정의는 단순히 연구해야 할 이론적 주제만이 아니라 실현해야 할, 그리고 이 실현을 위해 열정적으로 참여해야 할 실천적 과제였으며 이는 곧 독일 문화의 편협성과 지방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과정에서 전후 `탈나치화(나치 과거 청산)`의 혼란스런 실패, 즉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이 그에게 좌파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하버마스는 대학 시절 루카치를 통해 `청년 마르크스`를 알게 되었고 특히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읽고 충격적인 지적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고팅겐, 본,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 문학, 역사학 뿐만 아니라 경제학,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