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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과 다문화주의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시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더 깊게 들어가자면 서구인들이 비서구인들을 타자화 시켜서 보는 시선 또는 그러한 사고를 일컫는 말이다. 솔직히 나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관심이 가져지지도 않는 주제였지만 말 자체에서는 느껴지지 못했던 기분 나쁜 의미가 단어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 후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서구 사회는 문명의 울타리 안에 존재하고 그 밖의 모든 비서구 사회는 미숙하거나 야만의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을 정확히 표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리엔탈리즘의 당초 어원은 ‘동양에 대한 유럽 사회의 동경’이라고 한다. 굉장히 와전 된 셈이다. 계집애라는 말이 과거에는 모든 여자를 통틀어서 말한것에 비해 요즘에는 여자를 비하시켜서 말하는 것이라는 것과 같은 뉘앙스다. 그러나 그들이 동경했던 동양은 실재하는 동양이 아니라 그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동양이었다.
상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사랑을 하면 콩깍지가 씌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느껴진다. 서양에서 요가나, 침술 같은것이 유행을 하는 이유는 어느정도의 이런 영향이 포함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동양의 이미지는 항상 신비롭고, 미개한 이미지 인것이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이러한 느낌이 많이 난다. 월트디즈니사에서 만든 알라딘을 보자. 영화의 배경은 인도 같은 오리엔탈적 느낌이 많이 드는 그런 곳이다. 동양권인 우리가 봐도 신비롭다는 느낌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쓴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에 대한 하나의 담론 체계로서 단순히 조잡한 날조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인 체계를 이루면서 재생산되는 관념의 틀’이라고 정의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 속에 이미 ‘서구의 관점이 표준’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뜻이다.
느낌도 들었다. 어쨌든 수아드는 미혼인 상태에 임신을 해서 가족들에게 죽임을 당할뻔 했다. 그래서 이 여자를 굉장히 불쌍하고 측은하게 본 프랑스 구호가에 의해서 여자는 프랑스로 올수 있었고, 많은 성형수술로 인해서 정상적이지는 못하지만 생활하는데 부족하지 않을정도로 몸의 건강을 되 찾을수 있었다. 이 여자가 쓴 것은 과연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것이었을까? 서양인들이 이 책을 발간을 선호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약간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르지만 그런생각을 접을수는 없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쓴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에 대한 하나의 담론 체계로서 단순히 조잡한 날조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인 체계를 이루면서 재생산되는 관념의 틀’이라고 정의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 속에 이미 ‘서구의 관점이 표준’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뜻이다.
오리엔탈리즘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과거와 같이 지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으로 어떤 도전도 받지 않고 그대로 통용될 필요는 없다고 기대한다. 오늘날 이슬람의 역사, 종교, 문명, 사회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개별 학자들이 있고, 학문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성과를 산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클리포드 기어츠의 인류학이다. 그의 이슬람에 관한 관심은 매우 명확하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가 연구하는 고유의 사회와 여러 문제에 의해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지 , 오리엔탈리즘의 의례나 교의에 의해 생명력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한편 전통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학문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학자나 비평가도, 낡은 이데올로기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도 있다. 쟉크 베르크나 막심 로댕송이 활기차게 연구를 한 것은 그들이 갖는 방법론적인 자각이었다. 그들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① 눈앞에 있는 소재에 대한 직접적인 감수성② 스스로의 방법론과 그 실천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점검, 곧 스스로의 연구를 교조적인 선입관에 의해서가 아니고 소재 그 자체에 대하여 계속 감응하고자 하는 부단한 시도이다. 구조주의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