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조선 공산당
머리말
사회주의 이념 도입과 확산
(1)사회주의이념 수용·확산의 여러 계기
(2) 해외 한인들의 사회주의이념 수용
(3) 사회주의이념의 국내 확산
조선공산당 조직과 활동
(1) 창당준비과정
(2) 제 1,2차 조직과 활동
(3) 제 3,4차 조직과 활동
조선공산당의 정치노선
조선공산당의 해체
맺음말 참고문헌
★ 조선 공산당
머리말
일제하 식민지시기에 국내외에서 다양한 경향의 민족해방운동세력이 운동방법과 그 후의 국가건설의 전망을 달리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연대하면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해왔다. 그 중 중요한 한 줄기를 이루었던 것이 사회주의운동이었다. 사회주의운동은 기본적으로 계급해방(반자본과 반봉건)을 최고 강령으로 하는 운동이지만, 당시 식민지라는 조건하에서 민족독립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 독립이 전개되지 않는 계급해방은 성립될 수 없었다. 강대한 적인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하고 여러 경향의 운동이 연대하기 위해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사회주의운동은 그 이념적 본질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을 운동의 주체로 설정하고 있었지 때문에 민중을 민족해방운동 전선에 나서게 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여러 민족해방운동 세력들과의 연대, 즉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에도 노력했다.
이 글에서는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을 민족해방운동의 한 흐름으로 파악하면서 1920년대의 사회주의운동사를 살펴보려 한다. 그 중에서도 3·1운동 이후 사회…
사회주의 이념 도입과 확산
(1)사회주의이념 수용·확산의 여러 계기
으로서 매우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유화국면을 조성했으며 사회주의이념이 수용·확산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했다.
(2) 해외 한인들의 사회주의이념 수용
우리나라 초기 사회주의 운동 과정에서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역할이 컸다. 연해주· 시베리아· 중국내륙· 일본 등지에 각각 수십만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농민·노동자들로 보다 나은 생활터전을 찾아 그곳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열악한 처지는 면할 수 없었고, 우리나라가 식민지화된 이후에는 정치적인 망명객들과 유학생들도 다수 거주하게 됨으로써, 한인사회가 구성되고 혁명적 분위기가 조선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러시아 영토에 거주하고 있던 한인들은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러시아혁명에도 참가했으며 사회주의이념도 받아들였고, 혁명완성을 위해 한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취했다.
1918년 4월 이동휘· 박진순 등이 한인사회당을 만들고, 이동휘가 상하이 임정 국무총리에 임명되자 활동무대를 상하이로 옮겨 1921년 5월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결성했다. 이르쿠츠크를 중심으로 있던 조선인 김철훈·남만춘 등은 1920년 1월 이르쿠츠크에 한인공산당을 만들고 1921년 5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창립했다.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는 운동노선과 인식 등의 차이로 대립했는데, 결국 그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코민테른의 지시로 인해 해체되고 1922년 12월 코민테른에 의해 국내 ‘조선공산주의 그룹의 통일’을 목적으로 코민테른 원동부 산하에 꼬르뷰로를 설치했다.
(3) 사회주의이념의 국내 확산
해외한인 사회주의운동의 영향과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내에도 사회주의이념이 소개되었다. 사회주의적인 활동가들은 비합법적인 조직과 활동이 용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상단체라는 합법적인 간판을 내걸고 활동을 전개했다. 서울청년회, 무산자동지회, 신사상연구회(뒤에 화요회), 북성회(뒤에 북풍회)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활동가들은 토론회·강연회·좌담회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