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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은 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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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은 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1. 술의 탄생 및 술의 역사
?? 우리나라의 술의 역사
1) 고려시대 이전의 술
2) 고려시대의 술
3) 조선시대의 술
4) 일제장점기의 술
5) 광복이후의 술
6) 현대의 술
2. 일반적인 술의 의미
1) 술의 종류
2) 일반적인 술에 대한 인식
3. 그리스도적 관점에서 본 술에 대한 인식
4. 결론
□ 출처
○ 그리스도인은 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주제 : 그리스도인은 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1. 술의 탄생 및 술의 역사
구약성서에서는 노아(Noah)가 처음으로 포도주를 빚었다고 한다. 대홍수가 끝난 뒤 노아가 정착한 곳이 아라랏 산 근처인데, 이곳은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의 소아시아 지방으로 포도나무의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삼국사(古三國史)에 술에 얽힌 동명성왕의 건국 신화가 있다.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인연을 맺고자 할 때 미리 술을 준비하여 취하게 한 다음 큰딸 유화와의 사이에 주몽(侏蒙)을 낳게 하였다. 그가 바로 동명성왕으로 후일 고구려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 우리나라 술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술이…
1) 고려시대 이전의 술
2) 고려시대의 술
3) 조선시대의 술
4) 일제강점기의 술
5) 광복 이후의 술
조 기술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다양해지고 그 기술이 점차 고급화되어서 우리 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누룩과 제아밥(속청 고두밥), 그리고 물을 주원료로 술 담금 하는 일을 두 번 이상 반복하는 중양주가 발전하여 점차 품질이 높아지고 고급화 되었다.
4) 일제강점기의 술
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 후 일제는 그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토기개혁과 주류개혁을 시작하였다. 1907년에는 조선주세령을 발표하여 일반가정에서 술을 빚어 마시던 것을 금지시키고 양조면허를 받은 일부 지주에게만 술을 빚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까지 번창하였던 우리나라의 고유한 양조기술은 깊은 침체기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으며, 각 문중마다 특색이 있었던 전통의 술맛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우리나라의 토속주의 침체기는 광복 이후에도 장기간 계속되어 일반대중이 즐기는 술의 취향을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게 된다. 이런 상황은 1990년대에 들어서 정부가 전통주(傳統酒)를 적극적으로 부활시키려는 노력을 보일 때까지 계속된다.
5) 광복 이후의 술
광복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술에 관한 제도와 정책은 일제강점기의 주세법에 준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계속되는 식량 부족사태는 1960년대에 보리혼식과 무미일(無米日)의 제도화와 함께 쌀 막걸리의 생산을 금지하는데 이르렀다. 쌀을 주원료로 하던 막걸리와 약주의 제조에도 쌀의 이용이 금지되고 옥수수 혹은 밀가루 등으로 대체하게 하였다. 그래서 쌀로 빚던 약주나 증류소주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것은 당시 식량난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보다도 더 강력하게 주류 제조를 통제하는 제도였다.
이후 연속되는 풍년으로 쌀을 완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자 마침내 1977년 12월 8일부터 정부는 쌀 막걸리의 생산을 허용하였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14년동안이나 맛볼 수 없었던 흰 우유 빛의 쌀 막걸 리가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