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용산의 작은 상가구석에서 ‘신화’라는 이름으로 자라난 현주컴퓨터는 ‘용산PC신화’, ‘연매출 3천억’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현주의 김대성사장은 단기간 내에 엄청난 성장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현주는 89년 용산의 작은 상가에서 시작했다. 여느 컴퓨터상가와 다름없었지만, 그는 조립식PC를 앞세워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93년 국내최초 대학가의 특화판매를 거쳐서 전국의 시장에 뛰어든 현주는 98년 43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99년 1265억원, 2000년 3325억원까지 이뤄 냈고 2001년에는 코스닥에 입성하며 벤처 신화를 이어 가는 듯했지만 2005년 4월 25일 부도처리 됐다.
컴퓨터시장은 변화에 민감하다. 그리고 경쟁사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PC시장은 수요가 많아 더욱 더 매력적인 시장이다. 국내시장에는 여러 해외브랜드와 국산브랜드가 경쟁중이다.
국내 노트북 PC 시장은 지금까지 삼성전자의 독무대였다. 삼성전자는 줄곧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며 경쟁 업체를 멀찌감치 따돌려 왔다. 점점 가격경쟁이 심해지면서 삼성전자는 20%대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삼성다음은 LG 그리고 도시바, 삼보, 델 등의 회사가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현주가 아이 프랜드를 갖고나온 2000년도에는 삼성, LG-IBM이라는 큰 산이 시장을 가리고 있던 때였다. 현주는 저가전략을 펼쳤지만, 당시 노트북의 가격이 200~300만원을 호가하던 시장에선 저가라고 해도 170만원대의 높은 가격을 갖고 있다.
현주라는 날개를 꺾은 것은 여러 복합적인 요소였다. 노트북시장의 실패, PC시장의 변화, 노사와의 불편한 관계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노트북 시장의 실패가 현주의 날개를 꺾은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하여 초점을 맞추고 한때 국내 업계매출 3위에서 노트북시장에 뛰어들면서 순식간에 부도처리 된 현주컴퓨터를 마케팅측면에서 노트북시장의 실패원인을 찾고자 한다.
2. 현주컴의 비젼 ,경영이념 설명
…
3. 성공 과정
4. 몰락 과정
5. 경쟁사 대비 노트북 스펙
억원 달성까지의 10년에 있다.
용산의 여느 상가와 다름없이 조립pc를 판매하며 부품을 팔던 작은 상가는 공대와 PC동아리 등의 대학시장을 개척해내면서 용산의 PC신화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현주컴퓨터는 94년 12월 품질보증Q마크를 따내면서 전국구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3년 뒤인 97년 공장설립을 승인받고 같은 해 10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조립PC 벤처기업으로써 성공적인 시장진입을 이뤄냈다. 430억원의 매출을 이뤘던 98년에는 동남아시아지역 수출 및 협력업체 합작 사업을 시작하고 전국적인 A/S망을 구축하였다.
99년에는 부설연구소를 설립하였고, 국내소비자 실 판매 3위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일본, 캐나다지역 수출을 개시하며 1265억을 이루며 성공기반을 확보해내 나갔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3325억 매출을 달성하고 2001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하며 벤처신화를 이뤄냈다.
4. 몰락 과정
2001년 코스닥시장 상장을 마지막으로 현주컴퓨터는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2002년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면서도 코스닥 공모 자금으로 사옥을 짓고 신문지광고, TV 광고 등을 포함해 연간 수백억 원의 마케팅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기업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카드였던 노트북 시장마저 사실상 실패를 맞으면서 현주컴퓨터는 부도를 피치 못하게 되었다.
5. 경쟁사 대비 노트북 스펙
2002년 12월 삼성, LG, 삼보 그리고 현주의 출시품을 기준으로 비슷한 스펙을 조사하였다. 아래의 자료에서 비슷한 스펙에 브랜드마다 가격이 차이가 난다. 우선 삼성은 고가전략을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같은 시기 출시되었던 주력모델이지만 삼성은 스펙 면에서 성능이 우수함을 알 수 있다. CPU의 경우 나머지 경쟁사는 2.0GHz이하를 사용하는데 반해 삼성은 2.4GHz라는 고성능을 앞세우고 있다. 모니터의 경우에도 15“를 사용해 큰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성능 면에서 특이한 점은 타사에 비해 현주컴퓨터의 무게가 무겁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