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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화와 그에 대한 나의 생각
근대화란 무엇이며, 조선의 근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근대화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사회생활이 기능적으로 제분야 하는 것과 그것들을 포함한 사회전체 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 합리적, 계획적, 기능적, 조직적인 성질로 강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이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중세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의 전환의 과정을 의미하고, 보편적으로는 사회의 여러 요소들의 변화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변동과정이다.
구한말 개화기의 조선의 화두는 근대화였다. 서구 열강과 일본 등 근대화 세력의 침탈을 맞은 조선은 당시의 세계적 사조인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선진 문물을 배워서 국력을 배양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서세동점의 높은 파고가 몰아치던 19세기 말 조선은 쇄국과 의례 중심의 조공체제를 유지하며 중국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개항과 개화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처럼 근대국가로 나갈 것인가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외국과의 교역을 거절한 채 쇄국정책을 함으로서 발빠르게 대처한 일본의 근대화에 비해 늦어졌다. 조선이 쇄국이란 말을 정식으로 사용한 것은 일본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이양선침입소동, 서구열강의 개항요구에 대응하는 정책의 표시였다. 그러나 사실상 쇄국은 조선이 개국하면서부터 취해온 일관적인 정책이었다. 이러한 쇄국의 배경에는 수많았던 한반도의 약탈과 수난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쇄국의 역사는 한반도에 있어서 단지 근세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
그러니까 조선의 근대화는 봉건적인 사회제도, 의식구조, 생활양식 등이 내적 충동에 의해 변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지만, 근대화는 실제로 결국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왜곡된 형태로 진전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정이 이랬기 때문에 국가는 국가대로 왜곡이 심해 예외적 형태로 변화하였고, 시민사회는 그 발전의 여건이 최악이었다.
이러한 자생적 근대화가 실패는 당시 조선 사회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조선 후기 자생적 근대화의 실패는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시민사회를 근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19세기말 한반도가 외세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우리의 사유체계속으로 진입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생적 근대화의 실패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민사회’라는 개념의 실천을 미숙하게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시민사회는 서구의 역사적 특수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서구는 자생적 근대화를 통하여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다원주의의 전통아래 시민사회가 발전해왔다. 그런 만큼 한국은 근본적으로 이 범주가 다소 생경하고 뿌리가 취약한 편에 속한다. 시민사회가 뿌리가 성숙할 수 있는 시간과, 의식이 미처 준비되기도 전에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서 ‘주입식 근대화’ 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이 자본주의적 발전에 성공하고, 이에 부수적으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어 시민사회가 확대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시민사회의 미숙함은 여전한 것이다.
시민사회는 각성한 시민, 즉 개인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그 존립의 전제다. 일제와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근대화는 이런 점에서 시민사회 발전에 엄청난 역효과를 장기적으로 남기게 했다고 생각한다 일제는 군국주의와 식민주의로 개인을 짓밟았다. 시민권도 철저히 억압하고, 대신 황민의식을 주입하고자 했다. 조선인들이 아무리 저항했더라도 일제의 이같은 식민지배 프로젝트는 조선인들의 의식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런 의식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의 미숙한 시민사회의식의 역사적 배경은 바로 조선 후기 자생적 근대화의 실패인 것이다.
현재 한국의 발전은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진전이 지지부진하다. 경제적 측면이건 정치적 측면이건 현재 한국이 한 단계 높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