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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세계가 변하고 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단순한 산술적 시간의 변화가 무슨 본질적인 역사적 변화를 그 자체로 수반하고 있는 듯이 여기는,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세간의 역사철학적 의미부여에 우리가 꼭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세기의 전환점을 맞고 있는 우리는 아직 실체가 막연하기는 해도 심상치 않은 세상과 삶의 조건의 변화를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인터넷, 게놈 프로 젝트, 유전자 조작, 인간복제 등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준의 인간적 삶의 기술적 조건이 점차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탈산업사회로 상징되는 사회적·정치적 관계의 변화를 보면서 그러나 우리는 지금 놀라움과 희망보다는 차라리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돌진적 변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삶의 양식, 가치관, 세계 이해양식, 사회적·정치적 제도 등이 완전히 쓸모없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가 그러한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고 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마련한 `정보사회`니 `세계화`니 `탈산업사회`니 하는 따위의 개념적 도구들은 아직은 그 자체로는 빈약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그 오래되고 널리 퍼진 인간 중심주의적 철학적 신념이 이제야말로 비로소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그 완전한 증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때, 우리가 `우리로서는 이 세상의 변화를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동시에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정말 고약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인간은 삶과 죽음과 같은 생물학적-인간학적 조건을 …
특히 후자의 경우, 사람들은 파시즘과 독재가 싫어서 소극적으로 민주주의를
만 하다.
어쩌면 벌써 전세계적으로 추구되는 보편적 가치로서 자리잡은 `민주주의`가 그런 불안감을 달래줄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르겠다. 20세기의 첫 순간부터 오랫동안 지구의 반을 지배해 왔던 소련식 사회주의와 같은 형식의 진보의 실험이 다른 무엇보다도 그 `민주주의 적 결점` 때문에 처음부터 도전 받아왔고, 또 무엇보다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지자마자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대라는 차원을 떠난 그 어떤 `정당한` 진보정치도 가능하지 않음이 또한 분명해졌다. 어쨌든 현실사회주의를 내 팽개친 동구의 민중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삶의 운명을 바로 `민주주 의`의 이름으로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했고, `인권`과 `자유`의 깃발 아래 남미와 아시아 나라들까지 휩쓴 민주화의 물결은 역사적으로 애초에 서유럽 부르주아지의 태내에서 잉태되었던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양식이 지닌 그 보편적 운명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세기의 전환점에 서 있는 지금, 위에서 언급했던 정치의 위기는 정확하게 바로 이 민주주의의 위기로서 나타나고 있다.
이 심상치 않은 민주주의의 위기로서의 정치의 위기의 배후에는 그러나 단순히 막연하고 추상적인 미래의 불안감이 아니라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이미 얼마간은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되고 더욱 더 영향력이 확대될 것처럼 보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에 대한 규범적 -실천적 잠재력에 대한 회의가 벌써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유 럽과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적 장치들과 제도들의 문제해결 능력과 규범적 포용력에 대한 끊임없는 내부적 도전들이 줄을 이었었고, 그 발전한 민주주의는 외적으로는 아직도 그 제국주의적 구태를 완전 히 탈각하지 못한 듯이 보이는 가운데, 동유럽과 남미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등지의 신생민주주의는 아직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사람들은 파시즘과 독재가 싫어서 소극적으로 민주주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