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중국의 경제중심지
-상해의 경제지리
목차
Ⅰ. 중국의 경제중심지 ‘상해’
1. 상해의 지리적 위치
2. 상해의 역사
Ⅱ. 경제지리적 위치로 본 상해
1. 상해의 경제지리적 위치
2. 상해의 상업도시 발전과정
Ⅲ. 상해의 경제
1. 상해 경제의 특징
2. 적극적인 산업 구조조정 추진
Ⅳ. 포동지구
1. 포동신구의 개황과 연혁
2. 개발 추진경위
3. 3단계 개발계획
4. 포동개발구의 개요
4. 경제특구와 국가급 개발구의 비교
Ⅴ. 2004 상해 최근 현황
1. 경제
2. 사회
3. 금융 및 IT
4. 기타(교육, 관광, 법률)
5. 한국과 상해의 교류현황
Ⅵ. 상해의 미래전망
1. 21세기의 상해의 역할
2. 문제점과 개선방향
Ⅰ. 중국의 경제 중심지 `상해‘
전 세계의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유구한 문화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인구가 많은 나라로 중국은 오래전부터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으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의 이목집중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하이는 현재 중국 최대의 경제 중심지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정치·문화의 도시`라면, 상하이는 `경제의 도시`이다.
경제 도시답게 상하이는 11년째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두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1천7백만이 살고 있는 상하이는 2007년 1인당 GDP 7천5백달러를 목표로…
1. 상해의 지리적 위치
2. 상해의 역사
대에는 초(楚)나라에 귀속되었다. 248년 초 고열왕(考烈王)은 수상인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에게 상하이를 하사했다. 춘신군은 이 시절에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과 더불어 `사공자(四公子)`로 불리었다. 후대에 와서 춘신군을 기념하기 위해 상하이를 `春申` 또는 `申`으로 일컫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현재 상하이를 지칭하는 `申`의 유래이다. 또 시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는 황포강(黃浦江)은 `황헐포(黃歇浦)`로 불리다가 `황포강`으로 바뀌었다.
3세기 접어들어 상하이의 해변과 우송강(吳淞江)(또는 `소주하(蘇州河)`) 입구 일대는 고기잡이 어부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어부들은 갯벌에 대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꽂아놓고 썰물이 되면 물고기를 포획하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때 만든 울타리를 ‘후`라고 했으며, 이는 현재 상하이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1267년(南宋)에 상해진이 설치되면서 행정구역상 `상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했다. 이후 상해는 중국의 도시로서 이름을 남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실 상해의 이름이 중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지게 된 시기는 근세에 들어서이다.
상해는 1842년 아편전쟁(阿片戰爭)의 결과 맺어진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영·미·불 등 강대국의 무역을 위한 개항장(開港場)이 되자, 상공업도시로서 급속히 발전하여 중국 제1의 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상하이의 실권은 외국인의 해관세무사(海關稅務士)가 장악하고,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인정되는 외국인의 조계(租界)가 설치되는 등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 침략의 근거지가 되었다.
또한 상해는 중국 공산당 탄생지(1921년)이며 문화대혁명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4인방(四人幇)의 근거지이며, 근래에는 강택민(江澤民), 주룽지(朱容基), 리란칭(李嵐淸), 첸지천(錢其琛), 우방궈(吳邦國)등 다수의 중앙 지도자를 배출함으로써 북경과는 또 다른 의미의 정치, 문화,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