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서론
과학은 종교를 지적으로 용인할 수 없게 만드는가? 과학은 인격적인 신의 존재를 배척하는가? 가령 진화는 신의 섭리하는 개념 전체를 믿지 못할 것으로 만드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이른바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구성하며, 이 시대의 딜레마를 표현한다. 오늘날이 질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과학은 인간의 육체를 부요하게 했을지 모르지만 인간 정신의 공허를 확장시켰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힘 중 대표적인 이 둘의 부조화가 우리의 문명을 잠식하고 있다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닌 듯하다. 20세기를 거치면서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확고한 진리의 제공자로 자리를 굳히면서 종교를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시키는 듯했다. 그 가운데서 인간의 물질생활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이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의 정신생활을 더 피폐해졌다. 이것은 자연히 20세기 말, 과학에 대한 반성과 종교의 새로운 약진을 유발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학과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정리된 생각을 갖지 못함에 따라 많은 혼돈을 겪고 있다. 그러한 혼돈은 여전히 존재하며 흥미로운 다양한 답변들을 계속 불러일으킨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온 사람들이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이 책에서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지어 놓았다. 갈등 접근법, 분리 접근법, 접촉 접근법, 지지 접근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입장에 대해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를 갈등에서 대화로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Ⅱ. 본론
‘과학’과 ‘종교’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파란만장했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의 만남의 연대기에는 결코 전쟁 상황만 있는 것을 아니다.
1. 갈등
많은 과학 사상가들은 종교가 과학과 결코 …
2. 분리
3. 접촉
적으로 탐구하는 것이지만 종교가 하는 ‘게임’은 경험적 세계를 초월하는 궁극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과학과 과학적 회의론의 기저가 되는 가정을 구분하도록 한다. 융합이라는 의심스러운 기법을 활용하는 이들은 창조주의자들과 무지한 신앙인들만이 아니다. 과학적 회의론은 전형적으로 과학을 그들 자신의 신념 체제와 융합시킨다. 물론 그들의 신념 체계는 유신론이 아니라 ‘과학주의’다.
과학주의는 ‘과학이 진리로 이끄는 믿을 만한 유일한 인도자라고 믿는 것’으로 정의도리 수 있다. 과학주의는 결코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분리 옹호자들은 ‘과학’의 사악함에 대항하는 브라이언 애플야드의 전통적 종교 문화 옹호에 현력할 수 없다. 현대 문화에서 종교적 깊이를 빼앗아간 것은 애플야드가 주장하듯이 과학이 아니라 과학주의이다.
3. 접촉
분리 방법론은 명쾌함을 얻기 위한 중요한 단계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실재에 대한 더 통합된 상을 추구하는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언 바버가 말하듯이 분리는 도움이 되는 첫 접근법이지만 그것은 오도가도 못하는 막다른 골목에 사물들을 남겨놓는다.
종교를 과학에 연결시키는 접촉 방법론은 분리 입장에 의해 정의된 두 영역으로 세계를 구분해두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융합의 표면적 조화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과학과 종교가 논리적으로, 언어적으로 독특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그것들은 분리 입장이 가정하는 만큼 쉽게 구분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서양에서 종교는 과학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과학적 우주론은 반대로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비록 우리는 과학과 종교를 정의에 의해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구분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접촉 접근법은 과학자와 신학자 사이에 열린 대화를 추구한다. ‘접촉’이라는 용어는 필연적인 융합 없이 만나는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상호작용,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