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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씨 이야기...
생(生)의 열정 …. ` 소녀의 감수성이 가장 예민할 때에 나의 뿌리는 큰 빗줄기에 썩어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서 떠나버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마저도 걷히어 버렸다. 홀로 살게된 내겐 방 한칸을 채 메우지 못하는 외로움이 몰려 왔다.
그 시간과 공간에의 공허를 채워보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하고 라디오를 들어 보기도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외로움은 쉽사리 떠나질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혼잣말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운 이름이라면 누구와도 이야길 할 수 있었다. 몹시도 서러운 날이면 혼자 이야기를 하였다. 마치 엄마가 앞에 있는 것처럼 닿지 않는 엄마를 향해 이야길 하였다. 엄마를 부르며 울기라도 하면
" 울지마 혜민아 니가 울면 엄마는 너무도 가슴이 아프단다 "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 하였다. 자라지 못하는 나를 내버려두고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세상의 공허에 적응치 못해 평생을 홀로 멈추어 산 사람 좀머씨의 이야기를 말이다.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자신에게 충격이 된 일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남에 따라 조금은 편안하게 그 일에서 멀어져 이야길 할 수 있게 된다.
`좀머씨 이야기`란 소설은 어른이 된 소년의 회상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년은 자신의 유년의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던 은둔자 좀머씨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이제야 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듯, 한참을 뜸을 들이고서야 입을 연다. 세계 2차 대전이 종료된 후의 어느 마을이 이야기의 무대이다. 소년이 살던 마을에는 좀머라는 …
" 그러다 죽겠어요 "
라고 말을 하며 자신들의 차에 타기를 수 차례 권한다. 그러나 좀머씨는
" 그러니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
`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는... `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내가 내뱉던 혼잣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라치면, 지난 먼지 낀 상처까지도 꺼내어 가며 일일이 상대방을 이해시켜 가야 하는 것이 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홀로 말하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좀머씨와 마찮가지로 채울 수 없는 공허에서 도망치기 위해 나는 가슴에 겹겹의 막을 치고, 누구도 말을 붙일 수 없도록 굳은 표정을 하였다. 그리고선 나만의 길에서 헤메고 또 걷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제는 막을 걷고 일어나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공간에의 공허를 못 이겨 은둔자로 살아감은 내리는 빗줄기에 나의 뿌리가 모두 썩도록 내버려두는 것임을 알게 되었으므로…. 비록 뿌리는 썩어가고 있었지만 내게서는 새 희망의 잔가지가 뻗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좀머씨는 호수의 저 깊은 끝을 향해 걸으며 끝끝내 세상에서 도망쳐 버렸다. 하지만 소년의 기억을 통해, 나에게 또 세상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 한 것이다.
" 이 세상의 공허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을... 차라리 당당히 맞써 자신을 더욱 견고히 쌓아나가라 "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야 좀머씨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 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이유를, 구실을, 동기를 던지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뗀 것이다. 소년이 해준 좀머씨의 이야기는 내게 희망과 자신을 한껏 불어넣어 주었으므로, 희망의 증거가 되기 위해, 다시 일어난 나무가 되기 위해 나는 노력 할 것이다. 힘들다, 의심하다, 고민하다, 자신없다, 주저앉다, 쓰러지다 따위의 어떤 빈틈이 난 동사의 나열 따위는 다시 내겐 없다. 망설임, 후회, 미련 따위는 관속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 죽음 뒤로 밀어두고, 무엇을 하든 애매모호 하게 비겁하게 하지 않고 누가 보더라도 내가 만만찮음을 보일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호수의 한가운데로 여름(독일어로 좀머)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시작이다.
치열한 삶을 위해 가슴을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