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제목부터 나의 마음을 끈 이 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절제된 체취와 내면의 사색으로 가슴 깊은 곳을 울려주었다. 메마르고 야윈 마음으로는 이 책에 담겨있는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느끼기에 벅찰 정도였다.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교도소라는 외롭고 힘든 공간 속에서 이렇게 영혼을 다듬고 성찰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문에 나와있는 것처럼 옥중서간이라 하면 소외된 그야말로, 바닥의 생활에서 어둡고 그늘진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렇게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와 닿는 조용한 호소력을 가진 그 이야기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다가왔다.
글자 하나 하나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쉬워 다시 새기고 새기던 부분이 많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는 그 묘사는 거의 모든 편지에 실려있었으나 그 모든 표현이 새로웠고, 이런 바깥 생활에서도 그런 미묘한 변화는커녕 큰 변화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생활했던 나의 생활이 부끄러웠다. 해가 떠오르는 그 시간의 창 밖의 모습이라든지, 시선을 바꿀 때마다 반짝거리는 성에와 그 빙광을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나도 가끔씩 느껴보았던 그러한 감정들을, 감정 그 자체를 어떻게 그렇게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놀라웠다. 나는 생활하다가 문득문득 느끼던 이상한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해서 가슴이 갑갑하고 그런 적이 많았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벅찰 정도였다.
`벽 속의 이성과 감정` 이라는 글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 보고 싶었다. 교도소의 벽, 그것은 시야와 수족과, 그리고 사고를 한정하여 작아지고 좁아지고 짧아지게 하여 단편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편향을 띠게 한다고…
가 원하던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너무나 쉽게 좌절하고 이겨내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조용히, 언젠가 피어날 그 때를 기다리며 시련을 견디고 고통을 이겨내는 인고의 자세가 더더욱 필요한 것 같다.
`서도와 필재` 라는 글... 필재가 있는 사람은 재능에 의존하여 손 끝의 교를 벗어나기 어렵고, 필재가 없는 사람은 혼신의 노력으로 서도가 될 수 있다는 글이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그 사람의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 내밀한 인격이 되어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이라는 그의 말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불평해왔지만, 생각해보면 참 쉽고 편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내 능력으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교만에 차있기도 했다. 사실 처절하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어떤 것을 향해 노력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안주하면 안 될 것이다. 겸손하고, 더 높은 이상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더더욱 필요할 것이다. 또 지금까지 나는 내면의 미보다는 외모에 더 신경을 쓰고 살았던 것 같다.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미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베풀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배우고, 지적으로 더 성숙할수록 그에 알맞는 인격과 성품을 갖추도록 노력하겠다.
이제 가을도 풍성하게 무르익어 가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한 해 동안 키워온 생각들을 거두어본다는 그의 말처럼, 나도 이 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깊게 생각해본다. 자기 자신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곧 스스로를 간추려보게 한다는 용기의 원천이라는 말은 더더욱 나 자신에 대한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가 20년간 해온 이 수많은 사색의 흔적들은 나를 더욱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이를 통해서 나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눈을 더 크게 뜰 수 있었다. 남은 가을, 더 깊은 생각에 잠겨 성숙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