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5·16 군사쿠데타의 배경과 성격
I. 5·16의 배경
가. 군부적 요인
1. 군부의 형성
1945년 해방이 되자 건군에 뜻을 둔 많은 인사들은 저마다의 군 경력과 연고를 중심으로 군사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세력은 일본군출신의 장교들, 만주군 출신의 장교들, 그리고 중국군 출신과 광복군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구심점을 제시할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었기에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되어 1945년 11월 군정청에 등록된 군사단체의 수효는 무려 30여 개에 달하였다. 이러한 단체들은 1946년 1월 15일에 ‘남조선 국방 경비대’의 공식발족과 함께 통합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군 내부에는 출신성분이 다른 여러 인적자원의 결합체였다.
군 경력자들의 해방전후의 동향과 일반적 속성을 각 출신군별로 나누어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이들은 해방후 미군정의 창군정책에 다수 참여하게 되는데, 일본군에서 복무한 경력으로 ‘친일파’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어려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국주의의 습성으로 프라이드가 강하여 한에 뭉치기도 어려웠으며, 미군정기에는 군 고문관 제도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미군 고문과도 충돌하는 사례도 잦았다. 둘째, 만주군 출신은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세운 만주국에서 복무한 군인들을 말하는데, 이들의 특성으로는 일반적으로 당시 만주군 속에 혼재해 있던 5족(韓·日·蠻·蒙·漢)간의 …
2. 2공화국의 군부통제 실패
또한 민주당 정치인들과 군 장교들은 서로 교류가 없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사회적 출신성분이나 교육배경, 출신
지방, 연령, 이데올로기적 지향 등의 면에서 양측은 매우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한국의 전통적 상류계급 출신이 많았다. 교육면에서도 민주당 정부에 참여한 고위관리의 58%가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3. 5·16의 군부 내적 원인
회적 출신성분이나 교육배경, 출신
지방, 연령, 이데올로기적 지향 등의 면에서 양측은 매우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한국의 전통적 상류계급 출신이 많았다. 교육면에서도 민주당 정부에 참여한 고위관리의 58%가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3. 5·16의 군부 내적 원인
5·16의 군내부적 원인으로서는 군부의 내부정화를 위한 정군운동을 들 수 있다. 정군운동은 처음 1960년 군수기지 사령관이던 박정희소장이 당시의 참모총장 송효찬중장에게 3·15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군에서 물러가라고 충고한데서 비롯되었고 8명의 8기생 중령들이 육군참모총장에게 정군 건의를 위한 연판장을 제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송요찬은 이 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정군파 장교들 중에서 김종필, 김형욱, 석정선 등이 예편함으로써 정군운동은 사실상 끝이 났으나 이 사건은 곧장 5·16군사 쿠데타로 이어지는 교량이 되었다. 정군운동이 진행 중이던 1960년 9월 10일 소위 ‘충무장 결의’라는 것을 통해 처음으로 쿠데타를 모의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평화적 방법의 정군문제를 지양하고 직접 무력으로 민주당정권을 전복키로 결의한다.
육사 8기생들이 정군운동에 앞장서게된 배경을 알기 위해선 육사 8기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육사 8기생은 첫째, 인원수가 다른 기에 비해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둘째, 8기생들은 육군사관학교라는 명칭하에 졸업한 최초의 기였다. 이들은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교육기간은 짧고 연령에 있어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선배들과 4년제 정규육사를 졸업한 11기 이후의 장교들에 의해 지위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셋째, 8기는 일분군이나 중국군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민간인 출신이 많았다. 그리고 반공 운동을 한 경력자들이 다수 입교하였다. 또한 대부분이 남한 출신이었던 관계로 파벌주의와는 상대적으로 연관을 맺지 않았다. 넷째, 8기 중 성적우수자 30명은 일선으로 배치되지 않고 곧바로 육본에서 근무하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