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1.서론, 2.본론, 3.결론, 4.참고문헌, , , FileSize : 69K
본문/내용
장보고의 가문이나 가족상황 역시 전혀 알 수 없다. 다만<장씨 연원보감>에는 중국 저장성 출신의 귀화인으로 어부생활을 하던 백익(白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설과 완도에 군진을 설치하여 사병을 양성하는 호족 출신의 아들설 등 가설로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그의 후대는 완전히 단절됐다. 그의 피붙이들은 대역죄인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모두 죽음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 또한 현존하는 역사서마다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궁복(弓福)으로 쓰고 있는 데 반해 당나라 저명한 시인 두목(杜牧, 803~852)은 그의<번천문집>(권6)에서 장보고(張保皐)로 명기하고 있다. <속일본후기>등에서는 장보고(張寶高)로 쓰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이름 표기가 있지만 편의상 장보고(張保皐)로 표기할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한 국제적인 인물치고는 개인관련 정보나 기록물이 하나도 없다. 장보고에 관한 기록을 담은 역사적 기본사료가 국외보다 빈약하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이다.
신라시대 장보고에 대한 기록물로는 김부식(1075~1151)의 <삼국사기>(1145)가 처음이다. 일연(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