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왕검은 요(堯)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 요임금의즉위 원년이 무진이면,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은 아니다. 경인이라 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 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조선)이라 일컬었다. 또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다. 그 곳을 또는 궁(弓) ― 혹은 방(方) ― 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한다. 그는 일천오백 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일천구백여덟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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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1947, 1980), 『단군 신화의 신연구』 (정음사, 탐구당) 나경수(1988), 「한국 건국신화 연구」(전남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이재원(1990), 「단군 신화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3)」(『석천 정우상 박사 회갑기념 논 문집』, 교학사) 서영대 (1995), 「<북한학계의> 단군신화 연구」 (백산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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