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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19세기>>라는 잡지의 심포지움 주제인 '정치에서 대중의 판단은 상층 계급의 판단보다 더 정당한가?'에 대해 글래드스턴은 이렇게 답변하였다. "정치에서 대중의 판단의 우월성은, 그것이 우월한 한 내가 보기에는 주로 도덕적 대의와 더 위대한 정직에 기인하는 것인데, 이는 다시금 더 교묘한 유혹의 상대적인 부재 때문이다." 이어 그는 "한두 가지의 예외가 있지만, 지난 반세기의 위대한 업적들에 관한 대중의 판단은 …… 상층 계급 다수의 판단보다 더 정당하고 진실하였다"라고 확언하였다. 그런데 영국의 대중은 1886년 글래드스턴이 제안한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강력히 반대하였고, 법안은 하원 2독회에서 부결되었다. 그리고 자유당은 분열하였다. 7년 뒤 글래드스턴은 다시금 자치법안을 상정하였다. 반대는 역시 거세었다. 법안은 하원을 통과하였지만, 상원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되었다. 대중 민주주의의 시대에 반대자들로부터 '여론(vox populi)'을 이용한 '선동가', '독재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신뢰한 글래드스턴이 두 차례나 자치법안을 관철하려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ԧ세기 영국 정치사의 한 분수령이었던 글래드스턴의 아일랜드 자치법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연구자 자신의 정치적 노선과 강력하게 결부된 이 연구들은 주로 정당과 의회에 초점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