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고려 건국과 집권화정책
고려의 건국
왕건의 송악(지금 개성)지방의 호족을 본래 혈구진(穴口鎭, 지금의 강화도)을 비롯한 해상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궁예가 휘하에 들어가 수군을 이끌고 서남해 방면으로부터 후백제 지역을 공략하여 진도ㆍ금성(錦城, 지금 나주)을 점령한 것 이와 마찬가지로 후백제의 중국ㆍ일본과의 통로를 막고 또 북방에 대한 정면 공격을 견제하였다.
은 그러한 해상활동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전공으로 궁예의 신임을 얻어 광평성시중까지 올랐던 왕건은 서서히 자기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태봉의 궁예는 신라의 진골 중심의 정치제도에서 벗어나 널리 여러 신하들의 평의에 의하여 정치를 한다는 구상으로 광평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관제를 마련하고, 또 스스로를 미륵 불이라 부르면서 개혁정치에 의한 이상국가를 만들려 하였으나 지나친 미신적 불교와 참위사상에 빠져 민심을 잃게 되었다. 특히 궁예의 취약점은 호족으로서의 토착기반이 없다는 데 있었다. 이에 송악지방의 호족인 왕건이 마침내 궁예를 몰아내고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