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운 좋게도 이 여름엔 상하 두 권으로 나눠진 '백경'을 읽을 수 있었다. 줄거리는 간단 명료했지만, 그 사이사이 멜빌이 유식하게 펼쳐 보인 고래잡이에 관계되는 주변 지식들이 내 굳어진 머리에 생경하고 어려웠던 탓이었다. 내가 익히 느껴 온 바다는 푸른 수평선을 간직한 서정의 세계였다. 모래펄에 서 있으면 아득히 그리워지는 수평선 너머의 어떤 세계, 파도를 따라 무수히 날아오르는 갈매기, 금빛으로 부서지는 밤 바다의 달빛,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백경'속의 바다는 음울하고, 거칠고, 도전적이고, 고립된 그래서 가슴이 저려지는 그런 공간이었다. 모비딕과 에이헙의 사투가 벌어지는 공간, 바로 우리 삶의 세계를 암유(暗兪)하는 공간을 멜빌은 작중 화자(話者)인 이시메이얼의 눈을 빌려 어둡고, 외롭고, 차가운 곳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자작인 멜빌(Herman Melvile)이 빵을 위해 많은 직업을 시도하다가, 결국 부랑아들이나 도피자들이 찾던 직업인 포경업을 지원하면서 이 세상을 그런 차갑고 냉정한 곳으로 본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