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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에 대해서


레포트 > 사범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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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설명

벽골제에 대해서, <벽골제의 축조>, <벽골제의 규모>, , FileSize : 29K

본문/목차

벽골제에 대해서
<벽골제의 축조>
<벽골제의 규모>


전라북도 김제군 부량면 포교리와 월승리에 걸쳐 위치하고 있는 저수지의 중수비 및 그 제방. 사적 제111호. 이 저수지를 벽골제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이 유적은 농업국가로서 일찍부터 벼농사를 위하여 수리시설을 갖추었던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벽골제에 대한 역사적 연혁을 더듬어 살펴보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 흘해왕21년(330)에 공사를 시작하여 신라 원성왕 6년(790)에 증축하였다고 하며,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려 현종 및 인종 때와 조선 태종 15년(1415)에 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량면 포교리를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월승리에 이르는 평지에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고 약 3km에 달하는 제방이 잔존하고 있으며, 제방에 부수된 시설로는 제방의 남단 수문지였던 경장거와 북단 수문지였던 장생거 그리고 중앙 수문지였던 거대한 석주들이 우뚝 서 있다. 1925년 일제에 의한 동진농지개량조합에서 이 제방을 농지관개용의 간선수로로 개조하 여 이용함에 이르러 제방의 폭이 종단되어 두개로 갈라졌으며, 그 양분된 제방의 중앙을 수로로 만들어 농업용수를 흐르게 하였기 때문에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다. 1975년에 실시된 일부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제방의 높이는 북단이 4.3m, 남단이 3.3m, 수문의 구조는 길이 5.5m의 석주를 4.2m간격으로 세우고 석주의 안쪽에 너비 20cm, 깊이 12cm의 홈을 만들어 여기에 목제둑판을 넣어 상하로 이동시켜 방수량을 조절한 것으로 짐작된다. 수문 밖에 마련된 방수로는 그 양편에 일정한 크기로 가공된 장방형의 큰 석괴를 사용하여 대규모의 석축을 하였다. 수로의 바닥에는 대반석과 같은 석괴들을 깔아 웬만한 방수량에 능히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였다. 제방은 세번에 걸쳐서 판축되었고, 그 판축토 아래에 두께 2cm정도의 흑색 식물탄화층이 있어 이 탄화물로 세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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