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동안 서양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복잡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시기 일어났던 많은 일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일지라도 서구의 충격에 관련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관련되었을 뿐이다. 그 밖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도 이러한 충격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하지만, 충격이 낳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라는 점에서 볼 때, 단순히 충격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없거나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볼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다음의 검토는 충격과 대응론이 역사 이해의 지침으로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다고 기대되는 경우에서조차 한계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만청사(晩淸史)의 서구와 관련된 측면들
1) 반란
19세기 중국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서양이 아니라 국내적 불안이었다. 그 중 특히 비중 있는 4개의 반란, 즉 운남의 회교도 반란(1855~73), 북서의 또 다른 회교도 반란(1862~73), 염군 반란(1853~68) 그리고 가장 중요한 태평천국 반란(1850~64)이었다. 태평천국은 가장 파괴적이었고, 양자강 대부분을 완전히 황폐화시켰으며 2천만에서 4천만 명으로 추정되는 중국인이 이로 인해 죽었다. 19세기 반란 중에서도 태평천국은 서양의 침략에 상당히 영향받은 유일한 반란이었다.
태평천국 운동은 중국의 남부 지방에서 일어났는데 이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도 반란이 일어나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남부지방은 17세기에 만주지배하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지역이었으며, 청조 권력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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