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 초기시의 시적 자율성에 관하여

I. 들어가는 말
일반적으로 릴케 문학세계의 발전과정은 초기, 중기, 후기 세 단계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그때 그때 피력한 미적 입장에 대한 릴케의 진술을 근거로 삼는다. 가령 초기와 중기의 구분은 릴케가 파리에서 로댕을 만날 당시 새롭게 획득한 “사물시”로 명명되는 미적 인식이 척도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하면 초기시는 중기의 사물시 단계를 거쳐 소위 “성숙한 릴케”의 후기시『두이노의 비가』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의 습작과정으로 구분되며 문학적 완성도에 있어서 질적으로 폄하된다. 또한 이러한 구분과 평가는 릴케 자신이 초기 시절의 활동과 작업을 다소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이 발표한 시집의 일부를 세간에서 거둬들이며 시작(詩作)활동에 대하여 당혹감을 느꼈다는 릴케의 언급도 이러한 시각을 더욱 더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미 1960년 울리히 퓔레보른이 릴케 초기시 연구의 중요성을 주장한 이래 릴케의 초기시가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퓔레보른은 릴케시가 초기에서 후기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본질적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본질적 통일성을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이어지…(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