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 가공학 - 한과에 관해서
서 론
한과 및 벼(쌀)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
■한과[漢菓]의 역사적[歷史的], 시대적[時代的] 배경[背景]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과자를 과정류(菓釘類) 라고 하여 외래 과자와 구별했다. 유밀과와 다식, 정과, 과편, 숙실과, 엿강정 등을 통틀어 한과류(韓菓類)라고 한다.
菓란 말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수로 왕조 제수로서 과라는 것이 나온다. 제수로 쓰는 菓는 본래 자연의 과일인데, 과일이 없는 계절에는 곡분으로 과일의 형태를 만들고 여기에 과수의 가지를 꽂아서 제수로 삼았다고 한다. 과정류는 농경문화의 진전에 따른 곡물 산출의 증가와 숭불사조에서 오는 육식의 기피사조를 배경으로 신라고려시대에 특히 고도로 개발된 제례(第禮), 혼례(婚禮), 연회(宴會) 등에 필수적으로 오르는 음식이다.
삼국시대부터 기름과 꿀을 사용했으나, 이 재료들을 응용하여 과정류가 만들어 진 것은, 삼국 통일시대 이후로 보인다. 과정류가 차에 곁들이는 음식으로 만들어지고 음다풍속이 성행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불교가 융성했기 때문이다. 숭불사조가 고조되었던 통일신라에서 음다풍속과 육식 절제풍습이 존중됨에 따라 채식 음식과 곡류를 재료로 한 과정류가 발달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시대의 후기에 다과상(茶菓床), 진다례(進多禮), 다정(茶亭)모임 등의 의식이 형성되는데, 이에 따라 과정류도 급진적 발달을 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또한 불교를 호국 신앙으로 삼아 살생을 금했던 만큼, 육식이 절제됨에 따라 차를 마시는 풍속과 함께 과정류가 한층 더 성행하게 되었다. 과정류 중에서 특히 유밀과(油蜜菓)가 발달되어,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 크고 작은 행사에 반드시 고임상으로 쌓아 올려졌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과정류는 임금이 받는 어상(御床)을 비롯하여, 한 개인의 통과의례를 위한 상차림에 대표하는 음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과정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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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가지가 재배되다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주식으로 꼽히는 것이 열 가지 내외로 압축되었다. 이중에서도 밀(카우 사리), 쌀(카우 쑤어이), 옥수수(카우 폿)가 3대 주종을 이루고, 아메리카대륙의 원산이며 대부분이 가축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를 제외한다면 밀과 쌀이 세계 주식량의 2대맥(2大脈)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각기 서아시아(중동지방)와 동남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오늘날의 2대주식 곡물로 자리를 굳힌 6000~7000년 내외의 역사에서, 특히 벼 재배의 그것은 아시아의 각국문화를 특징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형(Oryza Sativa L.)은 히말라야 남쪽에서 북부인도, 북부버마, 월남, 동남중국에 걸치는 광장대(廣長帶)를 이루는 지역에서 재배진화되었다. 이 초기의 도종(稻種)은 세 가지의 특이한 생태지리학적(生態地理學的)인 품종족(品種族)을 이루어 갔으니 그 하나는 중국온대에서 최초로 재배되어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된 자포니카(시니카 또는 켕)형이다. 인디카형은 열대아시아에서 인근지역으로 퍼졌고 셋째의 자바니카(블루)형은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후에 이루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Oryza glaberrima라는 재배종이 나이저강 델타에서 세네갈과 감비아로 3000~3500년 전에 파급되었다 한다.
재배도(栽培稻)의 기원에 관하여 히말라야동부설(바비로프, 盛永[성영]), 印度說[인도설], 雲南[운남]貴州說][귀주설](柳子明[류자명]), 아삼운남지대설(雲南地帶說)등이 있다. 위의 장씨설(張氏說), 도변설(渡邊說) 및 좌좌목설(佐佐木說)은 대략적으로 서로 일치한다. 그 전의 동남아시아 내지 인도 기원설은 중국 남부와 인도 동부를 연결시키는 일대로 생각하는 설로 바뀌어 가는 느낌이 있다. 이는 야생벼의 분포, 재배 벼품종과 야생벼와의 유전적인 관련, 출토탄화미(出土炭化未)의 연대, 기타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한 것이므로 신빙성은 높은 것이다. 아시아稻[도] 기원 중심에서 사방으로 전파하여 나간 栽培稻[재배도] 종족 중에서 우리에게 직접 관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