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엽 이후 조선 후기의 가족의 모습을 보면, 지배층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너져 가는 사회질서를 봉건적인 성리학적 규범을 더 강조하면서 지탱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농경체계에 그 사상적 기반을 두었던 성리학이 더 이상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이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자 이러한 사상적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으로 종교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그 결과로 서구의 인권주의 사상과 남녀평등사상이 도입되었다.
일제는 반일 감정을 막기 위해 유교적, 봉건적 가치관과 천황 이데올로기를 중심원리로 하는 교육을 실시하였고, 봉건적인 일본식 민법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통치에 도움이 되는 봉건적인 우리나라의 구습을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등 변화된 사회경제 체제와 유리되는 봉건적 사회질서를 강요하였다.
광복과 함께 시작된 미군정은 일본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식민지 통치기구가 남한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과거 식민지 통치기구를 가능한 한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이질적인 서구문화를 도입하여, 전근대적인 가치관과 서구 가치관 간의 모순된 양극화 현상을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늘날의 생활문화는 근대적인 형태와 전근대적인 형태, 그리고 전통적인 형태와 외부에서 이입된 형태가 일관되지 않게 뒤섞이는 양상을 보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의례로 재현되었다.
가족주의는 모든 가치가 가족의 유지, 존속과 관련되며, 가족의 단결과 영속화와 가족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족주의는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 탈근대적인 가치관 사이에서 모순과 갈등을 겪으며 점진적으로 개인주의로 대체되고 있다. 노인에 대한 개인과 가족의 책임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부양의식은 점차 감소되는 반면, 사회와 가족의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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