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에 대해

2.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귀고리가 달랑거리는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 위로 베르메르의 그림이 서서히 겹쳐진다.

베르메르는 하녀를 일종의 연결 고리로 즐겨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 하녀들은 연인의 편지를 가져다 주거나 외부 세계와 사적인 공간을 연결해 주는 임무를 맡곤 했다. 드물게는 `우유를 따르는 여인`처럼 하녀의 모습을 주제로 삼기도 했다. 물론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귀부인이었다. 베르메르 역시 부유한 계층의 아내와 딸들을 많이 그렸다. 성서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거나 창부와 같이 예외적인 주제를 택할 때 외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대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정성 들여 장식한 채 비단을 두르고 보석을 걸친 ‘마님’들이었다. 부유한 귀족 계급인 후견인의 주문에 따른 것이기도 했고, 그에게 익숙한 인물을 대상으로 삼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 가운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터번을 두른 소녀)는 예외적이다. 이 소녀는 귀족의 아이도 빈민의 딸도 아닌 듯 보인다. 귀에 매달려 있는 귀고리는 값진 것이지만 머리에 두른 천과 옷차림만으론 쉽게 신분을 유추해 낼 수 없다. 터번 모양으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