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의미가 부상하는 이유는

느림을 강조하는 책들과 느림보 캐릭터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바쁘고 힘든 생활을 강요당하는 현대인의 삶에 비춰볼 때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비록 삶 속에서는 편안함과 여유를 얻을 수는 없지만 늘 느린 삶을 꿈꾸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체물에 욕망을 투영시켜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문화계에서는 잊혀졌던 `느림`의 가치와 미덕을 다시 추구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특히 미술계에서 두드러진다. 한 곳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몇 시간씩 걸려 `느리게` 찍는 박홍천씨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는 놀이공원에서 몇시간 동안 노출해 찍은 박씨의 사진에서는 빨리 움직이는 피사체들은 사라져버리고 정지해있거나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것들만이 남는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셔터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 이제는 수천 분의 1초를 찍어내는 것이 아주 쉬워진 현대 사진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는 촬영방식이다.